출장 차 잠시 들린 크라쿠프에서 약 반나절의 여유가 생겼다. 크라크푸 내의 올드타운, 바벨성 등 유명한 관광지가 눈에 아른거렸으나 크게 고민하지 않고 아우슈비츠를 가기로 결정했다. 올해 충격과 전율을 느끼며 하룻밤 사이에 읽은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 빅터 프랭클] 에서 묘사된 그 곳을 직접 두 눈으로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우슈비츠는 크라쿠프에서 자차로 약 한 시간 소요되는 72km 떨어진 곳에 있는데, 폴란드 말로 오시비엥침(Oswiecim) 이라는 지명에 위치하고 있다.
주차장에 도착해서 입구에 들어서면 아래의 긴 벽돌 건물이 나온다.
건물에 들어서면 벽면에 전시된 아우슈비츠 관련 서적이 눈에 띤다.
건물 1층에서 음료와 과자를 파는 편의점과 지하에 화장실이 있다. 전시 시간이 매우 길기 때문에 반드시 화장실을 들리는 것을 추천한다.
뮤지엄 입구에는 투어를 기다리는 관람객들로 붐빈다. 나도 일행과 함께 영어 가이드가 있는 투어를 신청했다. 가격은 약 20유로, 투어 일정은 약 3시간 이상이었다. 투어를 신청하면 모임 장소를 문자로 알려준다.
투어 가이드가 나누어준 안내 지도이다. 아우슈비츠는 제 1수용소와 제 2수용소인 비르케나우로 나뉘는데 차로 약 5분 거리에 떨어져 있다. 주차장 요금을 각각 내야하므로 참조. 무료 셔틀버스로 이동하는 방법도 있다.
가이드에게 입장권을 받고 입구에서 기다리면 시간에 맞춰 입장한다.
입장하면 다른 유럽의 유명한 박물관과 마찬가지로 소지품 검사를 한다.
수용소 입구. 아우슈비츠의 상징처럼 된 표어가 보인다.
"Arbeit macht frei(아르바이트 마흐트 프라이)
'노동이 그대를 자유롭게 하리라'
과연 노동을 통해 자유를 찾았을까. 어느 정도의 의미로는 맞다. 노동으로 몸이 다치거나 쇠약해지면 바로 가스실로 보내져 죽음을 맞이했으므로.
수용소는 얼핏 보면 벽돌로 지은 여러 동의 건물이 규칙적으로 늘어서 있어 어딘지 정돈된 느낌마저 든다. 서대문 형무소와 비슷한 인상이랄까.
과거 고압전류가 흐르는 철조망. 철조망에 몸은 던져 자살을 하던 희생자도 있었다고 한다.
첫 번째로 들어선 동은 "Extermination" 절멸이라는 뜻의 전시관이다.
섬뜩한 느낌이 단어이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그 느낌이 맞다.
전시장 초입에 있는 사진과 설명들. 나치는 수용소에 기차로 실려온 사람들이 도착하면 "분류" 부터 했다.
간단하게 말하면 일할 수 있는 사람과 아닌 사람.
일을 하지 못하는 노약자, 여성, 부상자 등은 도착하자마자 가스실로 보내졌다.
"분류"를 위한 두 줄로 된 긴 행렬. 그것이 가족을 보는 마지막이 될 것이라고는 누구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나치가 어떤 방법으로 집단학살(Genocide)을 저질렀는지 모형과 설명이 있다. 가스실에서 샤워기 헤드에서 나오는 독가스로 사람들을 대량 학살했다.
한 통에 4,000명은 족히 죽일 수 있는 치클론 B.
이 전시장에는 희생자들의 유품이 곳곳에 전시되어 있는데 신발, 의족, 가방, 옷, 머리카락 등이 있다.
신발을 보니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책의 내용이 떠올랐다.
신발이 찢어지거나 쓸 수 없게 된 수용자가 어린아이처럼 바닥에 엎드려 엉엉 울었다는 장면이었다.
혹독한 겨울에 도보로 수키로에서 수십 키로미터를 왕복하여 관로 공사에 부역하는 수용자에게 튼튼한 신발은 목숨과도 다름 없었을 것이다.
희생자들의 두발.
수용자들의 숙소와 위생 상황을 보여주는 전시동도 있다.
벽에는 희생자들의 사진과 정보가 빼곡하게 걸려있다. 자세히 보면 액자 아래에 수용소에 들어온 날과 사망한 날이 적혀있다. 짧게는 하루 길게는 몇 달이나 되는 기간도 보였다.
수용소에서 봉기나 저항을 한 수용자들을 수감한 동도 있다. 촬영이 금지된 곳인데 굶겨서 죽이는 형벌도 있었다고 한다.
아래는 동 외부의 총살을 실시하던 장소이다. 헌화된 꽃을 보니 가슴이 뭉클하다.
제1수용소와 제2소용소의 입구에 세워져 있는 지도이다. 수용소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제2 비르케나우 수용소 입구에 있는 서점이다. 관람이 끝나고 들리려고 했는데 문을 닫아서 못봤다. 비르케나우 수용소의 주차장에 더 큰 서점이 있으므로 그곳을 이용하면 된다.
비르케나우 수용소의 정면. 기차가 들어오는 입구가 인상적이다.
나치 독일 점령지와 추축국에서 아우슈비츠로 이송된 유대인들은 처음에 비르케나우 수용소의 기차역으로 모두 모여서 남자와 여자, 어린이와 노인들로 나뉘어진다. 그리고 곧이어 군의관이 약식으로 성인 남녀 중 노동 가능/불가능자를 나눈다.
우리가 자주 듣는 가스 살인 공장은 제2 수용소(비르케나우)로, 이곳은 여성과 노인 등 노동 능력이 떨어져 곧 제거될 인원으로 충당되었다. 또한 후술할 모든 희생자의 절반 이상을 기차역이 있는 여기서 우선적으로 죽였기 때문에 비르케나우의 가스실과 시체 처리실이 가장 컸다. 상대적으로 노동 능력이 있는 남성의 경우 1, 3 수용소에서 수용 후 강제 노역을 통해서 서서히 말려 죽여갔다. 물론 제1 수용소에도 가스실은 있었다.
- 위키백과 참조
비르케나우 수용소 안까지 이어져 있는 죽음의 기찻길.
희생자들이 사용한 숙소 내부. 지붕 밑의 창문에는 창이 없다.
화장실 건물. 수천명의 사람에게 하루에 단 세 번, 약 10분정도의 배변 시간이 주어졌다고 한다.
배변 후에는 물로 간단히 씻을 수 있는 되어 있다. 전쟁 후반부에는 급수조차 끊겨 인근의 강가에서 뒤처리를 했다 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수용소 내부.
마감시간이 가까워서인지 약 20분 정도로 관람은 짧게 끝났다.
주차장 정문으로 멀리 돌지 않고 손쉽게 들어갈 수 있는 개구멍(?)이 있다.
사람이 줄지어 서있는 곳을 금방 발견할 수 있다.
비르케나우 수용소 주차장에 있는 주차 정산기. 카드로만 결제가 된다. 카드 사용시 PIN 번호를 물어본다.
카드가 안되면 주차장을 나갈 때 주차요원이 현금도 받으므로 참조하길.
살이 에이는 추운날씨에 약 4시간 이어지는 관람 때문인지 숙소로 돌아가는 내내 말조차 꺼낼 기운이 없었다.
그보다는 정신적인 충격때문이었을까.
아우슈비츠를 방문했다는 소식을 들은 폴란드 친구가 이런 말을 해줬다. 아우슈비츠에서 본 것은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는 절대 잊을 수 있는 인생의 경험이라고. 이런 곳을 방문하면 현타가 극심하게 올 수 밖에 없으므로 행복한 것들을 계획하라고 했다.
과연 옳은 말이다. 즐거운 것을을 떠올려야지.
그리고 믿자. 이러한 쓰디쓴 경험을 통해 세상은 지금도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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